1939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한 강길원은 55년 광주사범학교를 거쳐 1958년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이 고장 출신인 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 화백을 비롯하여 임직순 화백 등을 스승으로
하여 화가가 되는 꿈을 키웠다. 국전 추천, 초대작가를 거쳐 사단법인 목우회 부이사장, 한국수채화협회 부회장, 현대사생회 회장,
조미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는 그는 각급 공모전의 심사위원, 운영위원 등을 지낸 바 있고 스페인 국제페스티벌에서 특별상,
미국 국제미술페스티벌에서 은상, 아시아미술상을 수상했고 작년에는 충청남도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도에는 미국브리짓드
대학교 교환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목우회 자문위원, 국립공주대학교 미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한국화단의 중진(重鎭)작가이다.
올해로 40여년의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동안의 작품활동을 총 집약한 화집(200p)발간과 아울러 개인
작품전을 지난 5월 3일부터 5월 8일까지 서울갤러리에서 성대히 열렸다.
이번에 열리는 뜻깊은 정년퇴임전에는 <후포의 초하> <가을찬가> <서귀포의 야망> <캘리포니아
해변> <거제도의 여름바다< >조치원의 과수원> <금수강산> <봄의노래> <진도풍경>
등 50여점이선보였다.
- 편집부 -
동서양을 막론하고 풍경화는 낙원사상에 기원한다. 아름다운 동산과 선악과 나무가 있는 풍경은 성서가 언급한 풍경의 기본 정신이다.
풍경화의 황금시대였던 17,8세기의 유럽풍경화가들은 아름다운 나무(숲)와 푸른 동산만이 아니라 바다와 강과 호수는 물론 해가
뜨고 지는 바다를 풍경 속에 끌어들였다. 그것이 풍경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에덴의 변형된 풍경인 것만은 확실하다.
<어느 가을날 2> 53 x 40.9cm 2003
<입석포의 가을> 90.9 x 65.1cm 1998
이런 사정은 동양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초의 풍경화는 풍수장이들이 지도처럼 그렸던
'명당' 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형편이 나아지고 그 규모도 엄청나게 커지면서 산수 풍경화는 실경(實景)이 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화가들이 그림 속에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렇게 풍경의 의미가 지나치게 변경되면서 풍경화는 점차 사람들의 흥미에서 멀어져 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풍경화는 분석적인 자연학의
한 방편이 되거나 풍경은 더 이상 존재하는 자연이기보다는 화가의 내면 의식이 투영되는 감성적인 대상이 되기도 한다. 풍경화가 여전히
화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이런 가능성 때문이다.
강길원의 작품들이 이런 맥락 속에 놓인다는 것은 그의 풍경들이 현대회화의 강렬한 색채미학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회화에 있어서 색채는 고대나 중세에 널리 통용되었던 계서의 의미보다는 색채 자체의 감각을 주목하고 그 감각으로부터
어떤 의지나 감정을 이끌어 내고 있다.
<중방대리의 여름> 53 x 45.5cm 1999
강길원의 작품에는 바로 이 색채의 의지와 감정이 풍요롭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풍경을 다만 거기에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을 그 나름의 색채의지와 감정으로 바꾸어 놓는 마술을 행하며 그는 마술을 즐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길원은 탐구하거나 분석하는 일 보다는 자연을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빅토와르 산을 통해서 세잔느가 자연풍경을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고갱은 자연을 허심탄회하게 감싸안을
뿐 아니라 그 자연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강길원은 확실히 후자에 속한다는 걸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강길원의 자연은 고갱처럼 지나치게 왜곡되거나 구속적이지는 않다.
그의 자연은 비록 색채로 구성되긴 하지만 우리를 놀라거나 당황케 만들지는 않는다. 이점은 그의 색채가 인상주의나 야수파의 미감보다는
퓨리즘에 훨씬 가깝다는 걸 의미한다. 만일 그의 풍경화에서 색채를 완벽하게 분리시켜 독립한다면 틀림없이 그의 작품들은 색채추상과
맥을 같이 할 것이다.
칸딘스키는 색체에 신지학적(神知學的) 개념을 도입하여 색채에 철학적인 해석을 가한 바 있다. 예컨대 검정색은 무(無)이고 영원한
침묵의 울림이라고 했으며 음악적으로는 종결을 의미하는 휴지부였다. 그런가 하면 빨강색은 생기가 넘치는 에네르기의 상징이며 해석
은 색채서정주의를 비롯해서 전후의 색채추상 양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강길원의 색채를 신지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물론 적절하지
않다. 그의 색채는 일찍이 그리스시대의 철학자들이 중용이라는 개념을 미덕으로 삼았듯이 색채를 모가 나지 않게 적절히 배합하는
절충미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봄의 노래> 53 x 45.5cm 2002
<공주의 여름> 90.9 x 65.1cm
<금수강산> 53 x 45.5cm 1998
그의 풍경들은 대부분 그가 6년간
살았던 제주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풍경들은
산, 바다, 배, 해녀, 모래사장, 유채꽃,
과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이들 소재들은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색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있어서
자연은 형상으로 변별되는 것이 아니라
색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길원은 색감정을 절약하고 은근하게 즐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지학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는 확실하게 빨강색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검정색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그린버그의 용어를 빌자면
그는 색채의 포리포니(Polyphony)를 통해 그 나름의 색채공화국을 의도하고 있다. 그의 풍경화들이 가볍게 보이고 그러면서도
풍요롭게 보이는 것은 그 증거다.
그의 풍경들은 대부분 그가 6년간 살았던 제주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풍경들은 산, 바다, 배, 해녀,
모래사장, 유채꽃, 과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있어 이들 소재들은 중요하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색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에 있어서 자연은 형상으로 변별되는 것이 아니라 색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안성의 봄날> 53 x 45.5cm 2000
<공주의 코스모스 추억> 53 x 45.5cm 2003
기실 자연은 어떤 경우이건 형태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형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쉬임없이 변모하고 있다. 노자가 "도(道)를
도
<설경> 53 x 45.5cm
라고 했을 때 이미 도가 아니다"라고 했던 것처럼 자연을 고정된 형태로
묶어 놓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강길원의 자연을 형태론서 파악하기보다는 색으로 느끼려고 했던 것은 그런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실 불가에 '색은 곧 공이다'라는 말이 있다. 색은 화려하여 우리의 눈을 현혹하며 그 화려하고 번잡한 걸로 하여 우리의 넋을 빼지만
기실은 '없는 것'의 환영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뜻은 그대로 쫓으면 결국 우리가 산다는 것은 색채의 질서나 색채의 조화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강길원의 풍경화에서 삶이 긍정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그의 낙천적이고 어린애 같은 심성이 여지없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그런 소지가
작품에 나타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산고와 같은 기나긴 고통이 뒤따랐다. 초기만 하더라도 그는 인물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농토와 씨름하거나 대장간에서 담금질하는 노동의 생활상을 그려냈고 아낙네들의 일상생활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렸다
. 지폐를 확대하여 거기에 매달려 있는 가족 그림은 비록 자서전적인 성격의 그림이긴
하지만 그의 초기의 작품세계를 헤아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강길원이 그 뒤 화풍을 바꾸어 사물을 다시점으로 접근하는 실험을 해 보였다. 그것은 대체로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매우 낭만적인 화풍이었다. 예컨대 아름다운 사원을 화면에 배치하고 사원 속에 조각의 인물이나 혹은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에
새겨진 아름다운 장식 문양을 다시 사원 건물만큼이나 크게 확대하여 하늘에다 그리는 것이다.
이를 다시점의 회화라고 한 것은 풍경을 고정된 한 시점에서만 보았던 것이 아니고
한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대상까지 보이게 만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강길원은 이런 실험을 스스로 역원근법이라고 호칭하면서 몰입했던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 다시점의 회화가 매력적이고 보다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던 작품들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그의 풍경화가 그만큼 무르익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공주의 초추> 53 x 45.5cm
작가 약력
• 조선대학교 미술과졸업
• 홍익대학교 대학원미술과 졸업
• 개인전 15 회
• 국전 특선 6회 수상
• 스페인 국제페스티벌 특별상
• 미국 국제미술페스티벌 은상
• 아시아 미술상
• 충청남도 문화상
• 대한민국미술대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역임
• 각종 공모전 심사위원 역임
• 목우회회원전, 해외교류전
• 작품소장: 독립 기념관 500호, 국립현대미술관 120호, 청와대 100호, 국무총리실 200호, 국회자민련
총재실 50호, 경남은행 1500호, 천안 상록리조트 400호, 농협중앙회 100호, 공주대학교 100호
